사회 이슈

이국종 교수는 왜 떠났나, ‘중증외상센터’로 본 한국 의료의 씁쓸한 민낯

숏클하우스 2025. 4. 1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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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이라는 이름이 다시 검색어 상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엔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가 있습니다.
수년 전, 헬기 옆에서 누군가를 들것에 실던 그의 얼굴은 우리에게 익숙해졌죠.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조용히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궁금해합니다.
“그는 왜 떠났을까?”
“그가 말했던 구조적 한계는 무엇이었을까?”

이 글은 넷플릭스 다큐와 현실을 나란히 두고, 우리가 놓쳤던 진실을 다시 살펴보려는 시도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영웅담보다 더 뿌리 깊은 현실, 이국종 교수가 진짜 싸워야 했던 상대는 무엇이었을까요?


[이국종을 다룬 콘텐츠가 왜 다시 주목받는가]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가 조명한 외상외과의 현실

넷플릭스는 최근 ‘중증외상센터’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선보였습니다.
이 시리즈는 대한민국의 외상외과 의사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들을 백강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조명합니다.

이 콘텐츠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자극 때문이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현실’ 때문이죠.
겉으로는 첨단 시스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멍투성이인 이 구조를 많은 이들이 처음 마주하게 된 겁니다.

이국종 교수가 남긴 영향력과 그가 떠난 이후의 변화

이국종 교수는 생존율 0%에 가까운 환자를 살려내며 ‘기적’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수술 잘하는 의사’가 아니었죠.
그는 시스템을 바꾸려 했고, 보이지 않는 싸움의 선봉에 섰습니다.

그가 떠난 이후, 외상센터 관련 뉴스는 확연히 줄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현상이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가 사라졌다는 건, 그만큼 고발도 사라졌다는 뜻”이죠.

최근 이국종 전 아주대병원 교수의 군의관 대상 강의를 통해 다시 한번 뉴스에 중증외상이라는 단어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드라마와 현실의 간극, 외상센터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

드라마와 실제 응급현장의 괴리

드라마 속 중증외상센터는 강렬합니다. 감동도 있고, 희망도 줍니다.
하지만 현실은 늘 그보다 복잡하고, 더 지칩니다.
진료실에선 장비가 고장 나고, 병상은 부족하며, 의료진은 번아웃에 시달립니다.

넷플릭스가 보여준 장면은 희망회로를 돌려나온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지만,
그 뒤에 감춰진 행정적 마비와 수익 중심의 운영 문제는 카메라에 담기지 않았습니다.

인력 부족, 시스템 미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싸움

외상외과는 사람이 있어야 돌아갑니다.
하지만 신규 전공의들은 이 과를 꺼립니다.
고생은 많고, 보상은 적기 때문이죠.

이국종 전 교수는 이런 구조에 대해 오래전부터 경고해 왔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센터도 없습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외침이 아닌, 현장의 비명이었습니다.


 

 

[의료인의 소명과 탈진 사이, 이국종의 고백]

사명감으로 버틴 시간들

이국종 교수는 단순한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환자를 살리는 것 외에도, 제도를 설득하고 시스템을 바꾸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환자 하나를 살리기 위해, 응급헬기를 도입하고 법률을 바꾸려 했으며, 정치와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열정은 언제부턴가 고통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구조를 고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그게 가장 괴로웠습니다.”
그가 남긴 이 말은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떠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이유들

그는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사람들은 ‘지쳤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더 이상 싸워도 바꿀 수 없는 구조”를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병원 내 정치, 예산 부족, 행정 비협조, 인사 갈등.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그를 밀어냈습니다.
그는 자리를 비웠고, 남겨진 시스템은 여전히 제자리입니다.


[한국 보건의료 시스템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권역외상센터 제도의 한계

정부는 권역외상센터를 전국적으로 확대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운영’입니다.
센터가 있어도 사람이 없고, 장비가 없어도 운영되며,
기존 병원 시스템과 따로 노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외상센터는 응급 상황의 허브가 되어야 하지만,
지금의 구조에선 '하나의 부속시설'로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제도의 한계이자, 철학 부재의 결과입니다.

한국 사회가 외상외과에 요구하는 ‘영웅화’의 이면

우리는 영웅을 만들고, 그에게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이국종 교수도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었습니다.
지치고, 실망하고, 외면당한 의료인이었죠.

문제는 우리가 여전히 그를 ‘돌아오라’고 말하면서도,
그가 떠났던 이유는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외상외과의 현실은 ‘영웅’이 필요한 구조가 아니라,
‘정상적인 시스템’이 필요한 구조입니다.
이제는 개인에게 짐을 떠넘기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국종 교수는 왜 떠났을까요?
그가 떠난 이유는 단 하나, “혼자 싸우기엔 너무 거대한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는 그가 고생해서 쌓아올린 중증외상센터의 희망을 보여주었고,
그 영상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헬기소리가 안나길 바라는 나의 편의만을 바라고 있는가?”

이 글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댓글로 의견을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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